The Art of Bowing - 제작의 글

공연을 20여 일 앞두고 ‘제작의 글’을 써 봅니다. 신작 발표에 대한 기쁨과 설렘도 잠시, 서울 이태원에서 들려온 비극적인 소식에 잠시 쓰던 글을 멈추고 추모와 위로의 시간을 가집니다.

<The Art of Bowing>은 직역하자면 ‘활질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5년 전 해금을 처음 시작하고부터 지금껏 거의 매일같이 ‘활질’을 해 오고 있는 연주자로서,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하여 말총을 줄에 마찰시켜 소리를 발생시키는 ‘활질’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제2의 신체인 악기는 연주자의 신체와 어떤 순간에 연결되고 분리되는지 들여다보았습니다. 나아가서 악기라는 물체와 활이라는 도구, 그리고 연주자 즉 사람의 신체가 만나서 발생하는 일들에 주목해 봅니다.

활질을 하는 행위는 활을 악기의 본체에 마찰시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는 위에서 아래로 팔을 움직이며 소리를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움직임을 수반합니다. 이 신체의 움직임은 활의 각도, 속력, 압력, 말총의 양, 줄의 장력 등 도구와 물체의 물리적인 요소를 실시간으로 변화시키며 역동적으로 작용합니다. 느슨한 활과 줄을 연주자가 직접 손의 악력을 조절해가며 소리를 만들어내는 해금에서의 활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달라지는 변화나 섬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공연에는 총 다섯 곡이 무대에 올려집니다. 그중 첫 두 곡―solo for haegeum해금 독주곡, AXES―과 마지막 두 곡―SSUL-EO!썰어!, trio for haegeum해금 삼중주―은 제가 서울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활동 기반을 옮긴 이후 최근 두 해 동안 작업해 온 것들이고, 다른 한 곡 BENDS구부림은 저와 오랜 시간 긴밀하게 협업해오고 있는 작곡가 Ulrich Krieger울리히 크리거가 제게 헌정한 곡으로, 해금 날것의 물성에서 출발하여, 활질에 대한 다양한 미학적인 지점들을 퍼포먼스와 사운드로 풀어가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2020년 <연습-EXERCISE> 이후 2년 만에 국내에서 신작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문래예술공장 음악ᐧ사운드아트분야 특화사업 <Sounds On>을 통해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실험해 볼 수 있었고, 올해 서울문화재단 비넥스트 지원사업을 통해 여러 제작진들과 함께 하나의 공연 작품으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창작자로서 저와 발걸음을 함께 해오고 있는 동료 음악가 Tim Feeney팀 피니, M A Harms엠 에이 함스, Matt LeVeque맷 레베크, Eliot Burk엘리엇 버크, Ulrich Krieger울리히 크리거에게 이 공연을 바칩니다. 항상 작품을 먼저 생각하며 ‘연주자를 위한’ 무대를 만들어 주신 김추수 작가님, 그동안 저와 다양한 연주 현장을 함께 경험하며 이번 공연을 여러 각도에서 소개해 주신 이상빈 작곡가님, 작품의 매무새를 가다듬어 주시는 김성훈, 이영욱 감독님, 든든한 모더레이터 성혜인 평론가님, 무대의 구석구석을 진중한 시선으로 담아주시는 김신중, 윤관희 작가님, 번역과 교열에 힘써주신 이병규, Kyle Bates카일 베이츠 님, 활질의 미학을 홍보물에 멋지게 담아주신 LIFT-OFF 최세진, 이진우 작가님, 프로덕션의 곳곳을 꼼꼼히 챙겨주신 한지윤 PD 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작품이 되도록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많은 예술가 동료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추운 날씨에 발걸음해 주시고 오늘 저의 활질에 귀 기울여주시는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2년 11월
주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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